2008년 7월 29일 화요일

파멸을 향해 기어가는 리모콘 기술자

요새 읽고 있는 책, '스틱!'에서 본 재밌는 비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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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 추가는 사실 매우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된다. 기술자(A)가 리모컨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흠, 여기 앞쪽 공간이 비는군. 그러고 보니 마이크로칩 용량도 좀 여유가 있었지. 남는 용량을 그냥 놀리느니 율리어스력과 그레고리력을 변환하는 기능을 넣는 게 어떨까?'

기술자(A)는 그저 사람을 돕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 리모컨을 더욱 개선하고 싶었을 뿐이다. 한편 팀의 다른 기술자(B)들은 달력변환 기능에 별반 관심이 없다. 쓸데없는 기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달력 변환기능을 추가하느니 차라리 내 모가지를 잘라!"라고 반대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리모컨과 다른 첨단기술 기기들은 점점 더 파멸을 향해 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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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에서 기술자(A)가 프로젝트 매니저, 또는 기획 리더라면 해당 프로젝트나 서비스는 점점 더 파멸을 향해 기어가는 것..이 아니라 뛰어가겠지요. 실무기획+PM 짬뽕 역할을 맡은 적 있었는데 기술자(A)와 기술자(B)스러운 내적 고민의 충돌 때문에 프로젝트 리딩은 커녕 기획 실무 자체가 어찌나 고민되던지..크흐~

2. 기술자(B)가 프로젝트, 서비스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는 관리자라면 결사 반대하겠지만, 사실 많은 관리자와 대부분의 실무자는 그냥 넘어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실무자는 그럴 수 있고, 또 그러한 발상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관리자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겠지요.

책 > 스틱!
http://book.daum.net/bookdetail/book.do?bookid=KOR9788901067179

(이 책에서 메시지 → 기획으로 바꿔도 잘 읽힙니다ㅎㅎ)


2008년 7월 25일 금요일

2008년 7월 22일 화요일

2008년 7월 17일 목요일

서비스 애칭과 소속감 부여로 티핑 포인트 넘기

(웹운영이라는 카테고리를 신설했습니다. 운영은 기획만큼 중요한 요소라 종종 관련 글을 써왔는데 앞으로 여기에다 올리겠습니다. 현재는 신규 서비스 기획 중이어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지 않은 관계로 과거 경험과 타 사이트 분석 위주로 올릴 것 같네요)

'얼리 어댑터'란 말은 최소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꽤 널리 쓰이는 용어가 됐습니다. 초기 혁신자(Innovators)와 얼리 어댑터에 의해 상품이 빠르게 확산되어 결국 대중들이 이용하게 된다는 논리인데, 이게 사실 에버릿 로저스(Everett M. Rogers)의 '혁신파급 이론(Diffusion of innovations)'에 기초한, 1962년에 처음 등장한 이론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본 곡선은 안보이고, PT 문서에 낑겨넣은 버전입니다-_-a



38년이 흘러 2000년,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의 책 덕분에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란 이론이 대중화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요인으로 거대한 변화가 온다는 이론인데요(캐즘과 비슷하죠), 물컵에 물이 가득 담겨 있을 때 한 방울로 물이 넘칠 때의 그 순간으로 보통 비유하더라구요.

로저스와 글래드웰은 다른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혁신자와 얼리 어댑터에 의해 혁신이 극적으로 파급되기 시작한 그 순간, 그 지점이 티핑 포인트가 되겠지요. 다른 어떤 상품보다도 네트워크 효과가 월등한 웹에 존재하는 서비스(상품)들은 이 두 가지 이론에 아주 잘 들어 맞습니다.

혁신적인 웹사이트(상품)가 등장하고, 혁신자와 얼리 어댑터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모인 충성도 높은 사용자들은 서비스를 계속 퍼뜨리고 티핑 포인트를 넘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서비스 담당자들이 따땃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는 '대박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요, 사실 티핑 포인트를 넘기지 못하고 그냥 쭉 가거나 고꾸라지는 서비스가 다수입니다. 혹은 티핑 포인트를 넘겼어도 원래 그릇이 작아서 고만고만해 보이는 서비스도 많죠.

예를 들어 주간 UV(순방문자) 100만을 목표로 A란 사이트를 기획하여, 디자인/개발을 끝내고 오픈했다고 가정할께요. 혁신파급 이론에서 혁신자(2.5%), 얼리 어댑터(13.5%) 공식을 그대로 쓰면, 100만명 중 16%, 즉 16만명의 혁신자+얼리 어댑터가 모여야 100만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서비스 초기 조건에 따른 목표 UV 설정과 성장곡선 예측에 대한 담론은 다음 번에 하겠습니다. 이 글은 운영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논외)

만일 서비스가 잘 나와서 목표 UV 100만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혁신자+얼리 어댑터 16만명을 빨리 끌어 모으는게 최우선 과제가 되겠지요(공장처럼 '160,000명 달성의 그날까지 '그러진 않겠지만 설명을 위해;;). 이들을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빨리 끌어모을 수 있을까요?

티핑 포인트 이론에서는, 티핑 포인트를 빨리 넘기기 위한 조건으로 세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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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법칙 : 80대 20의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대개 ‘직업’의 80%는 참여자 20%에 의해 수행된다는 개념이다. 전염에서는 이러한 불균형이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고착성의 법칙 : 고착성 요소는 전염되는 메시지를 기억하도록 만드는 특수한 방식이다. 정보를 제시하거나 구조화할 때, 작지만 고착성이 강한 변화만 주어도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상황의 힘 : 상황과 조건이 이런 것들이 작용하는 특수한 상황에 강한 영향을 받는 것이 전염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행동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인간 행동이 훨씬 더 암시에 걸리기 쉽다는 점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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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소수의 법칙은 이미 '16만명의 혁신자+얼리 어댑터'를 모으는 미션이 됩니다. 그럼 남은 것은 고착성의 법칙과 상황의 힘인데, 이미 사이트는 오픈했다고 가정했으니 이 두 가지 과제는 운영자의 몫이 됩니다. 고착성의 법칙과 상황의 힘.. 운영자는 어떻게 이 조건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고착성의 법칙은 소수의 법칙과 맞닿아 있습니다. 16만명에게 전염성 강한 메시지를 고착화시키면, 이들은 다른 84만명의 사용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열혈 사용자가 될 것입니다. 이런 전염성 강한 메시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서비스 명칭 또는 애칭, 그 자체가 우선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A : "웃대 정말 재밌던데?"
B : "웃대가 뭐야?"
A : "웃긴대학 준말인데, 거기 웃자 정말 웃겨"
B : "웃자는 또 뭐야?;;"

뭔가 신기하고 입에 달라붙는, 재밌는 말(웃대,웃자)을 들은 사용자 B는 그 메시지가 잊혀지질 않습니다. 집에 와서 컴을 키고 '웃대'를 검색하여 웃긴대학을 들어간 B. 슬슬 웃자(웃긴자료)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B는 다른 사용자에게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경험을 갖고 포털회사에 취직한 B. 운영자가 되어 2005년 4월, 다음 텔레비존을 맡게 되었습니다. 명칭이 어려워서 사용자들이 잘 외우질 못하고 전파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결심, '텔존'이란 서비스 애칭을 만들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밀게 됩니다. 다음 메인에 컨텐츠 제목 노출할 때 '[텔존] 송혜교 직찍.. 어쩌구' 식으로 달질 않나, 설문조사할때엔 '텔존인들 어떻게 생각하세요?'라 물어보기도 하고, 사용자인 척 하고 '텔존에 오니 뭐가 어떠하네' 댓글 달기도 하고..
(눈치채신 분도 계실텐데, B는 저입니다^^;)

텔레비존 서비스는 8개월 운영했고 2005년 12월에 다른 서비스(아고라)로 옮겨 갔습니다만, 그때의 결과는 아래와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비스 공식 명칭은 아직도 '텔레비존'입니다)

텔존 vs 텔레비존 검색결과
http://search.daum.net/search?t__nil_searchbox=btn&w=tot&sType=tot&q=%C5%DA%C1%B8+vs+%C5%DA%B7%B9%BA%F1%C1%B8

이제 '상황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2005년 여름,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청률이 무려 60%에 가까웠던 초대박난 작품이었는데요, 그때의 상황을 이용하여 텔존의 삼순이 게시판이 탄력을 받아 텔존 내 드라마 게시판 중에서 최초로 커뮤니티를 이룰 수 있었고(어떤 방법으로 커뮤니티를 유도했는지는 다음 번에),
이렇게 모인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커뮤니티 애칭 - '텔삼'은 웹에서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당시 삼순이 관련 컨텐츠가 모이는 4대 성지 중 하나였죠.(공홈, 디씨 삼순갤, 마이클럽, 그리고 텔삼)

요컨대,

티핑 포인트를 넘기기 위해서는 열성 사용자(혁신자+얼리 어댑터)들을 모으는 것이 첫번째 과제입니다. 물론 그들을 모을 수 있는 좋은 컨텐츠가 있어야 하겠고요. 이들이 다른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퍼뜨릴 수 있는 도구는 바로 메시지이며 서비스 명칭과 애칭 그 자체가 이러한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첫번째 메시지만 손에 쥐어 주면, 열성 사용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메시지를 계속 생산하며 다른 사용자들을 끌어 모으게 됩니다.(전 디씨폐인급은 아니고 몇몇 갤러리만 종종 들어가곤 합니다만 그래도 '해충갤'이란 이름은 머릿 속에 꽤 강렬히 남아 있습니다)

가장 좋은 케이스는, 기획할 때 부터 완벽한 명칭을 만들고 좋은 컨텐츠를 담도록 기획해서, 오픈한 다음에는 사용자들이 알아서 모이고 만들어진 메시지를 퍼뜨리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그런 마인드로 초기 기획에만 집중하고 운영은 신경쓰지 않는다면 페이스북은 지금도 하버드대생들 만을 위한 커뮤니티로 남아있겠죠.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아래 글 때문입니다ㅎㅎ
(성규님 땜시 새벽에 이러구 있다는~)

'블로거뉴스'라는 이름 마음에 드시나요?
http://dangun76.tistory.com/172

블로거뉴스의 실질적인 목표가 무엇이고 구체적인 수치는 얼마인지, 티핑 포인트는 현재 넘긴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만약 티핑 포인트를 넘긴 상태라 판단된다면(넘겼다고 해서 규모가 모두 큰 것은 아니지요), 서비스 명칭 자체를 변경하는 것은 현재까지 쌓인 모든 것을 버리고, 문닫고 새로 시작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 되겠지요. 만약 티핑 포인트를 넘기지 않은 초창기 서비스라면 과감히 결단 내릴 수도 있겠고요. 잘 결정하시리라 믿습니다.

혁신파급 곡선과 티핑 포인트로 원래 웹사이트 성장모델에 대한 글을 쓰던 것이 있었는데 약간 다른 주제로 글을 쓰게 됐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년 7월 16일 수요일

웹2.0 마인드맵 서비스 '만득이네' 소개

공짜 마인드맵 프로그램인 Freemind를 다시 깔려다가 최근 나온 마인드맵 프로그램이 더 있나 싶어 검색하다 발견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독창적인 공짜 마인드맵 서비스가 나왔네요.

이름하야.. '만득이네'...!!!

만득이네 사이트
http://www.mandki.com/index.php
프로그램 다운로드
http://www.mandki.com/contents/download/
제작자 블로그
http://blog.mandki.com/53

전혀 웹서비스 같지 않은, 웹2.0과는 더욱 더 거리가 멀어보이는 서비스 명칭부터 눈에 확 들어오는데요, 곰곰히 뜯어보니 상당히 괜찮습니다.

후딱 살펴본 프로그램 특징 -

1. 먼저 공짜라서 좋고,
2. Freemind에서 아쉬웠던 '굵은 가지' 지원 -_-;
3. 구글 이미지 검색, 오피스 클립보드 검색으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 마인드맵 제작 가능
4. 기본 단축키(F2, Insert키, Enter키)는 Freemind와 동일

아직 알파 버전이라 그런지 글꼴 색 지정 등 세심한 에디팅은 지원되지 않습니다만, 이미지 검색 및 첨부, 활용이 막강하네요.  참고로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후다닥 만든 원더걸스 마인드맵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 선예랑 소희 밖에 몰라서 -_-a


이런 만득이네를 '프로그램'이 아닌 '서비스'라 부른 이유는 웹과의 연동 때문입니다.

PC에서 제작한 마인드맵을 웹에 올릴 수 있고, 유튜브처럼 공유/별점주기/댓글/전체화면보기/관련컨텐츠 등등..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만득이네 사이트 자체가 유튜브랑 거의 똑같네요.



위의 예시처럼 퍼갈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플래시 마인드맵'으로 치환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느 분이 만드셨는지 궁금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니 사이트 하단에 보면 우리나라 일반 사용자들은 잘 모를 'Donate' 버튼도 붙어 있고.. 개발자 몇 분이서 만드신 것 같은데 정보가 없네요;)

현재 사이트를 보면 '세상의 모든 생각'을 공유한다는 컨셉으로 마인드맵을 올리도록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특성상 학생들의 교육, 학교, 시험 관련 공짜 정보들을 모으고 공유하는 것으로 처음에 포지셔닝 취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도 고2 무렵(1994년), 그때 막 한국에 출간된 토니 부잔의 마인드맵 책 보고 빠져서 역사, 지리 등의 과목을 마인드맵으로 작성하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있거든요.

"마인드맵으로 공부하면 시험 잘 보고 대학 잘 가요~ 각자 조금씩 만들어서 공짜로 올리고 공유하고 모두모두 대학 잘 가셈~" 이 컨셉으로 홍보하면 은근 먹힐 것 같은 짧은 생각이 퍼뜩.. -_-a

(그래서 아주아주 잘 나가면 우리나라 사교육비도 줄이고..)

암튼 제작자 분들께 감사합니다(__) 당분간은 Freemind와 혼용하여 잘 쓸께요^^;

참고 : 이 글에서 언급된 Freemind 다운로드 주소 붙일께요.
공짜 마인드맵 Freemind 0.8.1
http://freemind.sourceforge.net/wiki/index.php/Download


2008년 7월 13일 일요일

실전에서 웹기획자의 역할 2

기획자는 전략가입니다.

서비스, 사이트, 특정 페이지의 컨셉을 잡고,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Page Goal)를 세우고, 이를 위한 전략과 실행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기획자는 연구가입니다.

골방에 틀어박혀 몇달을 고민하여, 크리에이티브하기 이를데 없는 '세상에 없던 세상이 기다리는' 완벽한 기획서를 내놓는다? 기획자 본인에게만 완벽한 기획서가 되겠지요. 대한민국 3천만이 이용하는 웹, 수십명이 개발하는 서비스.. 특히나 대중적인 서비스를 고민한다면, 사용자와 프로젝트 멤버들이 내가 기획하는 것과 유사한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고 어떤 점을 아쉬워하고 있는지 리서치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기획자는 조정자입니다.

디자인, 개발을 100% 꿰뚫고 완벽하게 설계된 스토리보드를 내놓아서 아무 문제없이 프로젝트 끝까지 추진시킬 수는 없습니다. 사용자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참신한 UI를 고민한다면 그건 디자이너의 역할이고, 개발을 뭘로, 어떻게 할지는 당연히 개발자들의 역할입니다. 기획자는 컨셉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부적인 기획서를 그리지만, 그 최종 모습을 마음 속에 100% 그려서는 안됩니다. 기획자 본인에게만 완벽한, 마음 속의 최종 모습은 고집이 되고,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피곤해지고 로열티는 떨어지며, 서비스 품질은 더 나빠지게 되겠지요.

참고 글 : 실전에서 웹기획자의 역할 1
http://itagora.tistory.com/65

2008년 7월 3일 목요일

다음 조중동 기사 중단, 위기는 없다

검색해보니 정확히 4년전 기사군요. 2004년, KTH의 파란(Paran)이 포털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키고자 추진했던 '5개 스포츠지 독점 계약'은 결국 실행됐고, 이후에 스포츠지가 몰락하는 엉뚱한 파란을 일으키게 된 사건입니다.

파란, 5개 스포츠지에 뉴스 독점공급 추진, 2004.7.2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41&newsid=20040702055919463&cp=Edaily

(상략) 2일 `파란`을 운영하는 KTH는 "5개 스포츠신문과 매월 1억원을 지급하고 기사 독점 계약을 맺는 방안을 추진중"이라며 "네이버, 다음, 야후코리아 등 국내 상위 포털 5〜6개에 뉴스 공급을 중단하는 것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말했다. (하략)

이 독점 계약이 어떻게 스포츠지 스스로 몰락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까요.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4년 전 포털뉴스 상황은 이랬습니다.

2003년, 국내 포털 계에서 굳건한 1위였던 다음은 '미디어다음'을 만들면서 포털뉴스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합니다. 당시만 해도 사용자들의 포털 컨텐츠 이용행태는 단순하게, 목록에서 컨텐츠(기사) 찍어 보고 다시 목록 보다가 그냥 휙 나가는.. 트래픽이 많이 나올 수 없는 구조였는데요, 미디어다음은 업계 최초로 도입한 '오른쪽 컨텐츠 단락'(오늘의 주요뉴스, 깜짝뉴스 등)로 인해 트래픽이 폭증하기 시작합니다. 한번 미디어다음에 들어온 사용자는 오른쪽에 배치된 주요뉴스와 깜짝뉴스 등을 쭉 훑고 나가게 되면서 인당 PV(페이지뷰)가 폭증하게 되고 때마침 개발자 분의 실수(?)로 만들어진 '실시간 기사 조회수' 툴 때문에 트래픽은 그야말로 폭발하기에 이릅니다.

이를 경쟁사인 네이버가 놓칠 리가 없었죠. 네이버는 2004년 봄에 '네이버뉴스'를 전면 개편하여 댓글 도입, 오른쪽 컨텐츠 날개 도입(많이 본 기사), 스포츠 섹션화 등으로 미디어다음의 뒤를 쫓으며 쭉쭉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각 포털들이 인터넷 인재들을 모아 네티즌 취향에 맞는 포털뉴스를 만들며 쭉쭉 성장하는 동안 오프라인 마인드에 젖어 있는 종이신문들은 이를 따라가기가 참 버거운 실정이었죠.

그때만해도 종이신문들의 행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종이신문에 나간 뒤에 포털에 뉴스 공급하기 - 스트레이트성 기사의 경우 이미 연합뉴스 등의 통신사에서 이미 포털에 전송했기 때문에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2. 종이신문에 나간 기사 제목을 그대로 붙여서 전송하기 - 종이신문에서의 기사 제목과 인터넷에서의 기사 제목은 달라야 합니다. 종이신문의 독자는 제목, 부제목, 리드 문장, 첨부된 사진이나 도표 등이 한눈에 보이는 상태에서 그 기사를 읽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데 인터넷에서의 기사는 순전히 링크를 대표하는 제목 한 줄 만으로 결정하게 되거든요.

3. 자사 출고시간에 맞춰서 포털에 한꺼번에 전송하기 - 이 때문에 2004년에는 오후 2시 경 5대 스포츠지들이 우루루 한꺼번에 기사를 전송하곤 했습니다. 포털뉴스 편집자는 참 난감한 상황이었죠.

4. 밤에 벌어진 사건은 다음날 종이신문에 싣듯이 늦게 전송 - 예를 들어 밤 10시, 영화제가 진행되고 있는데 사진기자가 사진 아무리 많이 찍어도 다음날 오전에야 화보들을 전송한다면.. 인터넷 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생각난대로 적어본 건데요, 파란과 독점계약을 맺은 5대 스포츠지는 위의 네 가지 행태에 꼭 들어맞는, 인터넷 시대와는 맞지 않는 마인드로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하고 포털에 기사를 제공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포털에서 연예/스포츠 기사가 잘 팔리고 있다는 사실만 너무 굳건히 믿은 나머지 파란의 유혹에 넘어가게 됐고, 이를 비집고 등장한 마이데일리, 뉴스엔, OSEN 등의 인터넷 매체는 속보성, 인터넷 특성에 맞는 기사 제목, 풍부한 실시간 사진 컨텐츠 전송 등을 무기로 삼아 포털뉴스 시장에 새로운 강자(공급자)로 자리잡으면서 스포츠지는 결국 붕괴되고 말았죠.

그리고 4년. 이런 기사가 나왔습니다.

조·중·동, 7일0시부터 다음에 뉴스 공급 중단
http://media.daum.net/digital/it/view.html?cateid=1077&newsid=20080702183108670&cp=inews24

일부 네티즌들은 "다음에서 조중동을 안보게 됐다"며 환영을, 일부는 다음 주가 하락 등을 걱정하고 있는데요, 4년전 스포츠지 몰락과 비교하여 조중동도 결국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네티즌들의 희망 섞인) 분석도 꽤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당시 '종이신문들의 마인드'와 상황을 현 시점에 놓고 보면 들어 맞지 않습니다. 그 동안 조중동, 특히 조선과 중앙의 경우 언론사닷컴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자사 닷컴 사이트 자체가 꽤 성장한 편입니다. 동아를 제외하면, 다음과 당장 끊는다고 해서 유통망을 원점부터 고민해야 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죠.

또한 스포츠지에는 없던 무기가 조중동에는 있습니다. 스포츠와 연예 기사의 경우 어짜피 경기 결과와 스타 포토는 그 자체가 '팩트'인 것이고, 간혹 오보를 내보낼지라도 스포츠지가 원래 그래와서-_-;; 그런 기사를 내보낸 스포츠지나 인터넷 매체 포털이 피해를 입는 것은 그닥 많지 않았는데요,

조중동의 경우 기사가 편향적이라 욕먹지만, 시사 기사에서 '팩트' 자체가 틀린 경우는 다른 소규모 인터넷 매체보다는 덜한 편입니다. 조중동에서 내보내는 기사라면 그래도 '팩트' 차원에서는 믿을만 하다는 것이지요. 스포츠지 대신 손쉽게 소규모 인터넷 연예/스포츠 매체를 적극 활용했던 4년 전과 달리, 조중동이 끊긴다고 해서 이의 대안으로 인터넷 매체 기사만 활용할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4년 전의 스포츠지 몰락과 현 시점의 조중동 다음 기사 공급 중단은 차이가 납니다. 4년 전의 스포츠지는 100% 오프라인 마인드였고, 100% 대체 가능한 대안이 탄생했습니다. 조중동은 온라인 마인드를 꽤 흡수했고, 시사 기사에 있어서 만큼은 대한민국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안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포지션을 잡고 있다는 얘기)

그렇다면 여러 위기설 기사 대로, 오히려 조중동이 날개를 펴고 다음이 몰락하게 되는 그런 시나리오가 펼쳐질까요? 그렇진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은 4년 전의 포털뉴스 시장과 다르기에 그때의 스포츠지 몰락 시나리오를 대입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현 인터넷 매체 상황이 조중동에 그리 유리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명박 정권 친위대, 기관지를 자처한 동아일보.

속보성이 좋은 것도 아니고, 기사가 조선만큼 다양하지도 않습니다. 다양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고퀄리티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동아닷컴도 죽은 상황이지요. 모르긴 몰라도, 각 포털뉴스에서 동아일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할 겁니다. (이명박 정권이 기관지 키울려고 핫 소스를 동아에만 제공한다면 모를까;;) 따라서 동아일보 기사 공급 중단은 별 영향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중앙일보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중앙일보가 한때 네이버에만 공급하고 다음엔 공급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 별 이슈도 되지 않았습니다. 돌려 말하면 다음은 별 영향 받지 않았다는 것이죠. 또한 인터넷 기사 컨텐츠 전체를 놓고 냉철하게 말하면, 중앙일보는 주말판 기사가 좋은 정도입니다. 대안은 있겠죠.

이제 남은 것은 조선일보. 조선은 좀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쌓아둔 돈으로 고급 인력을 많이 뽑아 취재력 좋은 기자들을 전방위에 배치시켜왔고, 이 때문에 젊은 층 사이에서도 "조선은 정치기사 빼면 볼만하다"란 인식도 꽤 있는 상황이죠. 조선닷컴도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고 네이버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다음에 공급 안한다고 해서 유통망이 전무한 실정도 아니고요.

이렇게 조선의 경우가 좀 걸립니다만, 전체적으로 놓고 봤을 때 그렇게 큰 일은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조중동을 편드는 일부 보수계열 신문들은 "다음 클났다, 어쩔래", "다음 주식 대폭락!" 이렇게 들 떠 있지만, 실제로 기사 공급이 중단된다고 해서 대안 매체가 없는 것도 아니고, 다음을 좌파로 몰아 붙여 찍어 누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마다 미디어화되고 있는 민주주의2.0 시대의 네티즌들은 큰 힘이 되어줄 것이고..

조선의 고퀄리티 기사는 많이 아쉽겠지만, 거기에 일부 경제 매체가 조중동에 동조해서 빠진다 할지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에 들어오는 언론사 뉴스들. 이 중 조중동과 계열사가 빠진다면?


요컨대 위기는 없습니다.

조중동이란 일부 매체가 빠지는 것이고, 동아와 중앙의 경우 존심 상하겠지만 그리 위협적이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네이버는 뉴스편집을 빼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 같은데, 다음은 소셜 뉴스 도입, 아고라와 블로그의 결합 등 우리나라 네티즌을 믿고 더욱 다양한 매체 실험을 하면 좋겠습니다. IT 강국 대한민국, 전세계에 자랑할 만한 서비스 하나는 있어야겠죠. (그게.. 아고라? 또는 프로젝트 NB? ^^;)

오랜만에 올렸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