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0일 목요일

웹기획자 길을 걷게 된 이유

친한 개발자의 선배(웹기획자)와 같이 술먹으면서 나온 주제입니다.

"왜 웹기획자 길을 걷게 되었나요?"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게 신기합니다.
원래 수학,과학 좋아했고 산업공학과 진학했다가 학고 맞고 수능 다시 보고 신문방송학과로 학교 옮기고 기자 꿈꾸다가 Daum 뉴스 에디터로 첫 입사.. 그런데 지금은 웹기획자.

그런데 웹기획에 관심갖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었던 것 같아요.

1.

2004년도 초만 해도 IT 업계에 관한 뉴스는 보통 "포털 다음, 네이버는.."으로 시작했습니다. 다음이 네이버 보다 앞에 나왔던 게 당연했죠. 명백한 1등 포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일하면서 뉴스를 보다 보니 차츰 "포털 네이버, 다음은.."으로 쓰여진 기사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궁금해지더군요. UV, PV 같은 지표에 관심 갖게 되고, 여러 정황을 보니 2004년 하반기, 다음은 네이버한테 뒤집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네이버는 지식iN과 블로그를 기반으로 확 피어오르던 꽃이었고, 다음은 이를 막기 위해, 그리고 또다른 꽃인 싸이월드도 견제하기 위해 고민 끝에 다양한 서비스를 오픈하기에 이릅니다.

생각나는 것만 후딱 적어 보면..

플래닛 : 싸이월드는 미니홈피+클럽이란 조합이 생겼는데, 카페만 있고 1인 미디어에 소홀했던 다음이 뒤늦게 오픈한 미니홈피 me,too 서비스. 그래도 회원 층을 기반으로 초기에 꽤 올랐었음.

S플래닛 : 플래닛을 한단계 도약시키고자 만들었는데, 상위컨셉이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사용성, UI구현, 유저 선택권에서 문제가 있었음. 결정적으로 강제성을 띈 전환정책(플래닛→S플래닛) 때문에 그나마 있던 플래닛 사용자 마저 떠났음. (Daum의 개인화 서비스는 블로그가 승계)

키워드지존 : 예를 들어 '효리'란 키워드가 있고, 그 키워드를 가장 잘 알고 있는(질문에 대해 가장 답변 많이 한) 사용자를 우대해주는 지식 서비스. 지식iN과 확실히 다른 컨셉으로 오픈했고 컨셉 자체는 괜찮았는데, 문제는 지식iN이 네이버 검색 품질에 기여하면서 통합검색에 잘 녹아들었던 데 반해 키워드지존은 개별 키워드 미니홈피(?) 같은게 떠서 검색하는 사용자들을 엄청 불편하게 만듬.

이게 마음 아픈, 쉬쉬하던 이야기가 됐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잖아요. 저에게 있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충격이었고,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어떤 점이 사용자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는지, 핵심 가치는 무엇이고 어떻게 늘려 가야 하는 건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

2005년, 텔레비존 서비스를 맡게 되었습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따끈한 서비스였는데 그때 운영하시던 선배 기획자가 사정이 생겨 운영자를 내부 구인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누구도 안 맡으려고 했던;; 그러다 저까지 와서 "까라면 까야지" 생각으로 운영하게 됐습니다^^;

근데 해보니 재밌더라구요. 알바 1명 데리고 둘이서 운영하면서 PV 쭉쭉 키워나가는 맛.. 처음엔 연예인 사진으로만 장사하다가 나중에 드라마 커뮤니티(텔레비존 삼순이 게시판, 줄여서 텔삼)가 만들어지도록 유도하고, 그것이 성공했을 때의 기쁨은 매우 컸습니다. 1년 내내 정신없이 일했고 서비스는 쭉쭉 컸어요. 이를 바탕으로 리뉴얼 프로젝트 따내서 2005년 말에 기획, 오픈하게 됩니다.

그런데 웬걸?..

리뉴얼 후 조오금 더 크더니 정점 찍고 조금씩 빠지는 겁니다. "음? 왜 그렇지?".. 암만 운영해도, 컨텐츠 소싱해서 갖다 붙여도, 드라마 커뮤니티 잘 만들어져도 안 되는.. 벽에 부딪혔죠. 어떻게 하면 사용자 참여을 유도할까, 어떻게 하면 사용자를 더 모을까 고민하면서 이리저리 서핑하고 찾고 뒤지고.. 좀 창피한 이야기인데 그때(2005년 말) '웹2.0'이란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_-;;;

그리하여..
 
그때부터 쭉 웹기획자 길을 걷고 있습니다. 위에서 복합적인 이유라고 했는데 써보니 심플하군요;

사실 '웹기획자'란 말이 명쾌한 용어는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스토리보드 치기에 바쁜 사람도 분명 있을테고, 사이트 운영 쪽에 더 가까운 기획자도 있을 것이고, 회사로부터 크리에이티브만 계속 요구받아서 스트레스 받는 기획자도 있겠고, 전략 쪽에 가까운 기획자도 있겠죠.

엊그제 넥슨 북미쪽 외국 분들이 오셔서 본부장님이 데리고 한바퀴 돌면서 저희 파트까지 왔는데, '웹기획'이라는 걸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더라구요.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Web Planner도 썩 설명이 안되고.. 전략기획서와 스토리보드 보여주니 "User experience designer?"라 반문하는데 100% 매치되는 단어는 아니고.. 크 어렵더라구요ㅎ

아무튼 넓게 보면,
 
'웹의 사용자를 모으기 위해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 사이트를 만들 것인지 목표 설정하고, 리서치부터 시작하여 전략 및 구체적인 실행방안 만들어 설득하고 이를 계획서(스토리보드,시나리오)로 만들면서 계속 디자이너와 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하고, 베타 만들어지면 테스트하고 오픈하고, 오픈 후 사용자 봐 가면서 계속 업데이트 기획하는 사람이 웹기획자'.. 라 정의할 수 있겠고, 큰 회사의 웹기획자라면 위의 프로세스 중에서 일부만 담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프로젝트 프로세스를 명쾌하게 이해하고 실행하며, 사용성과 정보배치 엄청 고민한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사용자에게 무슨 가치를 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사용자를 끌어 모으고 유지시키고 더 모을 수 있는지가 웹기획자에게 좀 더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쓰다보니 길어졌네요. 제가 어떤 관점으로 웹기획을 바라보고 글을 쓰는지 살짝 배경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드 뒤지니 튀어나온.. 05년 4월, 웹기획자를 흉내내며 만들었던 1페이지짜리 개편 제안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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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개:

  1. trackback from: 지하생활자의 생각
    웹기획자의 정의: 웹의 사용자를 모으기 위해, 사용자에게 어떠한 가치를 주는 사이트를 만들 것인지 리서치하고 전략 고민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 만들어 설득하고 이를 계획서(스토리보드,시나리오)로 만들면서 계속 디자이너와 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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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웹기획자라 읽고.. 뭐라고 불러드려야 하는 걸까요? ㅎㅎ 많은 것들을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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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박스타 - 2008/11/21 22:34
    함님이라 부르면 되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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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웹의 사용자를 모으기 위해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 사이트를 만들 것인지 목표 설정하고, 리서치부터 시작하여 전략 및 구체적인 실행방안 만들어 설득하고 이를 계획서(스토리보드,시나리오)로 만들면서 계속 디자이너와 개발자와 커뮤니케이션하고, 베타 만들어지면 테스트하고 오픈하고, 오픈 후 사용자 봐 가면서 계속 업데이트 기획하는 사람이 웹기획자' 가 되시길 바랍니다.무개념 무계획적인 기획자들만 봐서 기획자에대한 안좋은 생각만 가지고 잇는게 사실이고 또 너무 힘드네요. 기획자다 디자인(순수디자인,플래시) html퍼블리시,그리고 개발의 영역을 구분 못한다면 말이 될까요? 전 지금 그런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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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세상의 연과~~ 무언의 연결된 끈들에.. 참 놀라곤 하는데...

    와~ 우연히 검색하다.. 보게되네요.. ^^

    그 술자리에서 질문을 던졌던 사람입니다..



    기획자란..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고.. 고집도 있고..

    control당하기 보단 control하고 싶어하고...

    참.. 복잡 다단한 사람이죠..



    저는 웹(?)이란 말로 한정짓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기획의 영역은 다양한거고.. 하고싶은것도 주관적인거니까..



    날 뭐라고 불러야하지?????

    항상 정체성 고민에 시달리지만...

    "자신에 대한 자부심"은 가지시는 기획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자주.. 또 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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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심소희 - 2008/11/27 15:36
    크하~ 대체 뭘 검색하다 발견하셨나요ㅎㅎ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놀러 오세욧~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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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이태임 - 2008/11/25 09:41
    말씀하신 대로, 제가 쓴 글 대로 그런 기획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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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저도 웹마스터에서 어찌어찌하여 MD일을 하다가 웹기획자로 막 들어선 사람입니다.

    그리고 웹2.0이란 말도 2달전에 알았죠 ㅎㅎㅎ

    막상 웹기획자일을 시작하고 나서 이래저래 조금 복잡한 마음이었는데

    조금은 길이 보는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글 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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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생선머리 - 2008/12/15 18:05
    ㅎㅎ 네 댓글 감사합니다. 뭐, 사람 가는 길 다 비슷하겠죠^^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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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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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Anonymous - 2009/01/03 22:38
    오 그러셨군요~ 저도 2006년도 Daum에서 월드컵 일했었는데ㅎㅎ 블로그로 종종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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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트람 - 2009/01/07 02:57
    감사합니다^^; 저도 블로그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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