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7일 화요일

김연아와 마케다, 아웃라이어로 본 성공조건

'티핑 포인트'로 유명한 말콤 글래드웰의 새 책, <아웃라이어>가 화제입니다. 한번 잡으니 끝까지 읽게 되더군요. 말콤 글래드웰도 재밌게 책 쓰는 아웃라이어(outlier, 크기 n인 표본에서 아주 큰 값이나 아주 작은 값을 갖는 관측값, 여기서는 '아주 크게 성공한 사람')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책에는 굉장히 많은 사례가 쭉쭉 나오는데, 아웃라이어가 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요인이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입니다.

개인의 타고 난 능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1만 여 시간에 달하는 수련 시간(deliberate practice)이 더 중요하고 사회 제도와 문화, 성장할 때의 주변 환경, 교육 여건, 부모님의 교육에 대한 태도, 훌륭한 은사, 심지어 시대적 기회라는 '운빨'까지도 따라준 사람들이 바로 '아웃라이어'라는 것입니다.

글래드웰은 "난 기회가 없으니 아웃라이어 못 되겠네, 쳇"하고 넘어가길 바란 게 아닙니다. 위의 수많은 조건 중 제도와 문화, 교육 여건 등도 있는데 이러한 사회적 장치가 보완되어 재능 있는 사람들이 보다 많은 기회를 얻도록 바꿔나가자.. 라고 얘기하는 거죠. 한국의 교육자들이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아무튼 이 책을 읽고 나니 최근의 아웃라이어 들을 이 책에 비춰 해석해보게 되더군요.

먼저 피겨 여왕 김연아부터 살펴보면.. 타고 난 신체 조건도 무시할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아웃라이어 조건은 역시 '지독한 연습'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일주일에 한번씩 스케이트를 새 걸로 바꿔야 했다고 하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98&aid=0000014745&

(상략) 하루에 6번. 1년에 1800번. 
김연아가 1년에 휴일을 뺀 300일 동안 점프를 하면서 넘어진 횟수다. 보통 사람 같으면 진작 포기하고도 남았을 고통이다. 김연아는 그만큼 지독한 ‘연습벌레’다. 

김연아가 주니어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2006년 5월. 연습을 너무 많이 한 탓에 4개월은 신어야 하는 스케이트화가 일주일을 버티지 못했다. 매주 새로 스케이트화를 사는 데 지친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 씨가 “연아는 은퇴하기로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략)
---------------------------------------------

아마도 아웃라이어 조건인 1만 시간은 채우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연습량을 채울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노력도 컸죠. IMF로 사업 부도 위기를 맞았던 아버지가 딸을 믿고 재정적 뒷바라지를 꾸준히 했으며 어머니의 조력은 이미 유명하니 패스..(관련 기사

타고 난 신체조건, 부모님의 뒷바라지, 본인이 기꺼이 소화한 엄청난 연습량.. 결국 2006년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니 스케이트를 공짜로 제공해주겠다는 업체가 나타나는 '행운의 기회'도 잡았고 브라이언 오셔라는 훌륭한 코치도 만나게 됩니다. 재능, 노력, 도움, 기회가 맞아 떨어졌죠.

어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영웅이 된 이탈리아 출신 마케다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 가능할 것입니다.

타고 난 신체조건이 좋았고, 어린 시절부터 유소년 팀에서 엄청나게 연습했고, 두각을 나타내니 더 좋은 훈련을 받고 기회가 주어졌고, 이 때문에 맨유에까지 소식이 알려져서 조기 스카웃되고(가족까지 영국으로 이주시켰다죠)..

이제 맨유에서는 훌륭한 스승인 솔샤르를 만나 더욱 더 수련을 쌓고, 퍼거슨 감독이 중요한 경기에 데뷔전을 치르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고, 마침 또 골을 터트리고.. 정말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는 훌륭한 환경이었던 거고, 그 또한 그 기회를 잘 잡았던 것입니다.

(마케다는 처음에 '마체다'라고 나왔는데, che가 이탈리아어로 '께'에 가깝게 발음되고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 '케'가 맞다고 하네요)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는 분명 재밌고, 빌 게이츠와 스티븐 잡스로부터 시작하여 김연아와 마케다 같은 스포츠 선수에도 잘 들어 맞습니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그럼 나도 회사에서 일한 시간이 10년 여 되고, 1만 시간은 충분히 넘으니 아웃라이어인 건가"라 반문할 수도 있는데 여기서의 1만 시간은 수련에 쌓는 시간(deliberate practice)이라는 것입니다. ('애자일 이야기'에서 발췌)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했던 일을 또 하며 1만 시간을 채운다면 그 시간은 쓸모가 없는 거죠. 다르게 해석하면 연차는 짧더라도 맡은 일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개선안을 강구하고 실천하여 이를 통해 스스로 업그레이드 하는 '수련'에 투자한 시간이 크다면 금방 '아웃라이어'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요컨대 아웃라이어의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지만 몇몇 조건은 본인 스스로 콘트롤하여 만들어 나갈 수 있고, 사회/학교/회사 등의 기관에서도 몇 가지 조건은 깔아줄 수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경우 사회/학교 등 기관에서 엄청나게 도와줬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이를 어머니가 커버했고, 마케다는 이탈리아 유소년 팀이 결정적인 첫 단추였던 셈이죠.

대한민국 교육을 돌이켜 보면.. 이러한 '결정적인 첫 단추'를 다양하게, 많이, 동등하게 제공하여 많은 재능있는 청소년들이 동앗줄을 타고 쭉쭉 올라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할텐데 일제고사로 대변되는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은 이를 역행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아웃라이어 조건이 강남 8학군, 무슨 학원 출신, SKY 졸업 식으로 굳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

댓글 2개:

  1. 오랜만에 개념글 감사합니다.2009년 4월 8일 오전 4:38

    차고 넘치는 김연아에 대한 무수한 글이 쏟아지는 가운데, 적나라한 피겨 지식과 줄줄이 외워대는 피겨연대에다 독단적이고 혼자 김연아 팬인냥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피면 욕하고 비난하고 마구 삿대질 하는 풍경이 참...보기 안좋았는데... 김연아는 위하면서 왜 서로들은 안 위하고 헐뜯고 무시하는지? 인격도 찾아볼수 없는 글속에서 참 수준이 챙피하더군요. 그런데 정말 개념글 발견하니 기분이 다 좋아지는 군요.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2. @오랜만에 개념글 감사합니다. - 2009/04/08 04:38
    좋게 봐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