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일 토요일

한국이 일본보다 흥청망청? 통계 해석은 제대로 해야

재밌는 통계 기사가 나왔습니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했을 당시 한국의 해외여행 지출액은 일본의 5.8배에 달했으며, 작년만 놓고 비교해도 3.7배 수준이라고 하네요.

국민소득 2만달러 때, 韓 '흥청망청' 日 '체질개선' - 머니투데이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41&newsid=20080729120104110

'분수 넘친' 해외여행 - 한국일보
http://media.daum.net/economic/finance/view.html?cateid=1037&newsid=20080730024105917

[사설] 해외여행 경비 '일본의 3.7배'라니 - 아시아경제
http://media.daum.net/editorial/editorial/view.html?cateid=1053&newsid=20080730125508358

위 세 기사의 결론은 한국인들이 '흥청망청' 쓰고 있으며 '분수 넘쳤다'고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기사에서 똑바로 밝히진 않았지만, 제목만 놓고 보면 이는 국민성의 차이 때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과연 '한국인들 국민성이 문제라서 분수도 모르고 흥청망청 쓰고 있다'라고 단정하는 것이 옳을까요? 그러니 기사 결론대로 '한국인들 아껴쓰자'고 하면 끝나는 것일까요?

분명 한국인들이 일본보다 해외여행 경비를 더 많이 쓰고 있는 것으로 통계에 잡힌 것은 사실입니다. 돈을 어렵게 모으면서도 정말 국민성이 그지 같아서 쉽게 낭비하는 민족이라 그런걸까요?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분석하는 게 중요하겠죠. 상식에 기초하여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돈을 벌어서 쓰는 방법을 네 가지로 볼 수 있겠죠.

1. 어렵게 벌어서 어렵게 쓴다
2. 어렵게 벌어서 쉽게 쓴다
3. 쉽게 벌어서 어렵게 쓴다
4. 쉽게 벌어서 쉽게 쓴다

여기서 해외여행 경비는 '쉽게 쓴다'에 해당할 것입니다. (물론 고생하는 자주파 해외유학의 경우 '어렵게 쓴다'에 해당되겠지만 그렇게 어렵게 쓴 지출 모아봤자 저런 통계가 나오지 않을테니 논외)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일본보다 2번과 4번의 비중이 훨씬 높다고 유추할 수 있겠지요. 2번과 4번을 다시 한번 써보겠습니다.

2. 어렵게 벌어서 쉽게 쓴다
4. 쉽게 벌어서 쉽게 쓴다

이 중 한국의 문제가 전적으로 2번에 기초한 것이라면 정말 국민성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한국인들이 분수를 모르고 흥청망청 쓰는 것이겠죠. 어렵게 돈을 모아 1년에 한 번 해외여행을 가는 것을 낙으로 아는 직장인들도 꽤 있습니다만, 이들 만으로 한국의 전체 통계가 일본의 3.7~5.8배로 나올 순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4번입니다.

한국의 문제가 4번이라면 한국의 소득과 분배 구조가 잘못된 것으로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불로소득자들이 많고,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쉽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죠. 전반적으로 쉽게 벌고 세금 적게 내는 계층이 있기에 이들은 쉽게 해외여행 가고 흥청망청 쓸 수 밖에요. 이렇게 4번이 문제라면, '한국인들 흥청망청 쓴다'는 얘기는 이들 특정 계층에 한정된 얘기가 될 것입니다.

요컨대 해외여행 경비 과다 문제의 근원은 4번을 포함하여 이렇게 복합적으로 유추됩니다.

가. 한국은 일본보다 쉽게 돈 버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들이 더 쉽게 쓰고 낭비하고 있다.

나. 한국 정부는 이들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여 세금 매기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또는 안 매기고 있다) 그러니 다른 곳에 더 낭비.

다. 경제에 거품이 꼈다. 국민들은 자신의 소득수준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며, 실질 소득보다 더 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부동산 거품으로 대변되는 자산 거품이 크다. (이 이유가 컸다면 올해는 정말 해외여행 대폭 줄겠죠)

라. 돈을 어렵게 버는 젊은층이 미래를 포기했다. 차근차근 모아 뭘 하기엔 미래가 안 보이는..
(국민성으로 직결될 수 있는 논리지만, 가능성은 있으니 포함)

이렇게 네 가지로 유추하는 것이 더 명쾌하지 않을까 합니다.

통계는, 숫자 자체가 사실이라도 해석을 제대로 못하면 이번 건 처럼 완전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분수도 모르고 흥청망청 쓰고 있으니 아껴쓰자고 캠페인 벌어야 겠네' 이렇게 결론 내려서 국민들에게 '해외여행 자제해주세요^^' 라고 메시지 전달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얘기지요. 쉽게 버는 계층이 저런 메시지에 감화되지도 않을테고, 그 밑의 계층에겐 딴나라 얘기로 들릴테고..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여, '소득 있는 곳에 세금있다' 원칙을 확실히 이행하여 불로소득이나 자영업(변호사,의사도 포함)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여 세금 때리고, 자산 거품은 꺼뜨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정당하게 돈 벌어 어렵게 쓰는' 구조를 만든다면 해외여행 경비 지출이 확실히 줄어들겠지요.

더 부지런하다면 한국과 일본의 계층별 소득구조 및 여러 통계들을 조사해볼텐데 그럴 여력까지는 안되네요. 아무튼 위의 기사들 및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한국 사회가 점점 더 돈=재력=권력=교육=계층의 대물림=쉽게 돈벌기 혈안..으로 이어지는 천민 자본주의로 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관련 글 :
총선, 한국 고교생, 그리고 꽃들에게 희망을
http://itagora.tistory.com/38

댓글 3개:

  1. 통계수치로 볼 때 우리나라의 해외여행 경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 원인을 추적하는 데에 있어서 기사들을 포함해서 모든 추론들이 적절한 증거를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인을 파악하려면 해외여행 경비가 어떤 항목에서 누가 얼마나 쓰고 있는지 알아야 할텐데, 한은 측까지 '여행수지 개선을 통해 투자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 정도의 1차적인 반응만 보이니 한심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론, 한국인 배낭여행자 보다는 일본인 배낭여행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던데, 단순히 학생들 해외여행 가는 등의 원인으로 여행수지 적자가 심각해지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한은 측에서 그냥 저렇게 발표하지 말고 조사를 좀 해서 같이 발표해주면 좋을텐데요.

    답글삭제
  2. @아즈 - 2008/08/02 03:06
    제 경험으로는 유럽 쪽에서는 한국인 여행자가 일본인 여행자의 두, 세배 이상 되어 보였습니다. 동아시아인이 보이면, 10명 중 6,7명은 중국인이나 대만인이고, 한국인이 2~3명, 일본인이 1명 정도의 비율이었습니다. 다른 지역은 모르지만, 서유럽에서는 그렇더군요.

    답글삭제
  3. @아즈 - 2008/08/02 03:06
    댓글 감사합니다. 우선 인구 수에서 비교가 안되니 해외여행 인원 수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설마 많지는 않을테고(이런 것도 통계자료 나와주면 좋겠네요), 인당 씀씀이가 크니 저런 통계가 나왔을 것 같습니다. 이걸 정말 뜯어고칠 의지가 있다면 제대로 분석하고 대처해야 할텐데 말이죠..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