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7일 수요일

노 대통령이 꿈꾼 '민주주의2.0'은 뭘까

웹2.0이란 말이 있습니다. 약 5년 전, 기존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 웹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했고 이런 새로운 웹서비스들을 들여다 보니 뭔가 공통점이 있더라.. 그래서 과거의 서비스와 구분짓기 위해 등장한 용어가 바로 웹2.0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민주주의도 웹이 발전하면서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오프라인의 간접 민주주의를 민주주의1.0이라 부른다면 과거와는 다른 특징을 가진, 인터넷의 수평적 소통에 의한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민주주의2.0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민주주의2.0에 앞장섰죠.

 

그가 퇴임 후 만들었던 토론 사이트의 이름도 민주주의2.0이었구요.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2.0 개설 인사말에서 "자유롭게 대화하되, 깊이있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시민공간을 만들어보자. 개방, 공유, 참여의 웹2.0의 정신에 책임이라는 가치를 더해 민주주의 2.0의 운영원칙으로 삼았으면 한다"고 밝혔었습니다. (by 위키피디아)

 

그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해서는 안됩니다.

 

노 대통령이 추구했던 민주주의2.0이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작년에 썼던 글을 토대로 다시 한번 정리해서 노 대통령의 작은 비석 위에 이 글을 올리겠습니다.

 

(본문 시작) ----------------------------------------------------

 

민주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민주주의(民主主義) :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
http://krdic.daum.net/dickr/contents.do?offset=A015194000&query1=A015194000#A015194000

위의 민주주의 정의를 육하원칙으로 구분하면 빠진게 있어요.

누가 : 국민이
언제 : ?
어디서 : ?
무엇을 : 권력을
어떻게 : 스스로 행사한다.
왜 : (민주주의를 왜 하냐는 건 여기서 논외)

여기서 빠진 '언제'와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에 대한 정책적 정의가 각국의 민주주의 형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이 권력을 스스로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큰 이벤트는 대선이고, 이는 5년마다(언제), 투표장에서(어디서), 강력한 권한과 막중한 책임을 가진 대통령을 1인 1투표로 직접 선출(어떻게)하는 방식의 룰로 요약됩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에서 이러한 룰은 강제화되었고, 이 룰을 깨고 국민이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부시 시절의 미국을 보면, 작년과 올해의 우리나라를 보면 민주주의 자체에 회의가 들 정도죠.

 

부시 시절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이라크전에 염증을 느끼고 반대했지만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여 이라크전을 저지하거나 부시를 도중에 끌어내리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저 다음 대선만 바라보고 오바마를 선출했죠.

힐러리와 오바마가 붙어서 승자가 맥케인과 붙어 대통령을 결정하는.. 이런 과정은 마치 '슈퍼 영웅'의 탄생 과정과 비슷할 지 몰라도 그 결과는 엄청난 다운그레이드 및 버그의 집합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두 번의 미 대선 결과였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최악의' 부시 대통령이 저런 과정을 거쳐 두 번 다 당선됐고 8년 동안 권좌를 유지했으니 말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간접 민주주의 버그의 집합체? =_=;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21세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어떨까요?

사실 독재정권을 제외하고 나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체제에서 우리가 살게 된 건 기껏 20년 정도 밖에 안 되고, 최근의 대선과 총선 결과 및 그 후의 일들을 지켜보면 민주주의 결과물에 대해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발달한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권력을 스스로 행사 함에 있어 주저함이 없는 '직접 참여하는 빠른 민주주의'에도 이미 익숙해졌습니다.


2004년. 일부 정치꾼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려던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 대체 그때 탄핵 명분이 뭐였는지 생각도 안나네요. 국민이 나서서 인터넷을 활용하여 빠르게 '룰'을 만들었고, 스스로의 권력을 행사하여 이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연이은 실책들을 참다 참다 못해 미국 쇠고기 수입 건에서 폭발한 국민들.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언제, 어디서, 어떻게' 룰을 빠르게 설정하고 권력을 스스로 행사했습니다. 결국 대국민 사과와 재협상을 이끌어 냈죠.

 

직접 민주주의 시대였던 고대 그리스 시절, 아고라(agora)에 시민들이 모여 국가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은 위험인물의 이름을 조개(도편)에 적어 추방하던 '도편추방제'의 21세기 버전이랄까요.

웹과 만난 21세기형 도편추방제. 웹처럼, 웹2.0의 기치처럼, 과거의 느린 민주주의와는 다르게 그 주체인 국민들이 직접 룰을 만들고, 웹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현실의 정치에 빠르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비폭력적인 촛불 시위에서 하나됨을 즐기고, 다음 아고라 1천만 서명을 새로고침하며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즐기는 참여. 이는 정말 민주주의 2.0이라 부를 만 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가 보고 겪고 있는 것은,
 
'우리가 뽑은 권력의 대리인에 결함이 있다면 인터넷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빠르게 리콜 조치 들어가는 민주주의 2.0'인 것이고, 두 번의 소중한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 2.0의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인터넷 사용자는 주간 3천만 명. 어마어마한 수입니다.

 

건전한 상식을 갖고 활동하는 네티즌도 많지만, 일부가 '찌질하게' 뉴스 댓글에서 장난쳐도, 그 일부가 3천만명의 0.1%라 쳐도 3만명이나 됩니다. 이들이 과도하게 찌질하게 장난치면 네티즌들 수준 전체가 떨어져 보일 수 밖에 없어요.

 

결국 이는 인터넷에 부정적인 보수 언론의 좋은 공격 소재가 되고, 인터넷 여론 자체의 값어치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정부나 기관, 사이트 자체가 나서서 이를 단속해서도 안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민주주의적으로 푸는 것이죠.

 

일단 네티즌 스스로가 뉴스 댓글, 블로그 등 '공공의 장소'에서 만큼이라도 자신이 쏟아내는 콘텐츠에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인터넷에서도 개인적인 공간과 공공의 장소를 좀 더 구분해서 접근하자는 얘기입니다. (실명제 하자는 얘기는 절대 아님)

 

그리고 웹서비스들이 네티즌들의 여론(=콘텐츠)을 평가할 수 있는 도구를 잘 만들고, 이를 네티즌들 손에 쥐어줘야 합니다. 악플 등 좋지 않은 콘텐츠가 눈에 띄면 이를 집단지성으로 빠르게 걸러낼 수 있도록요.

 

또한 미래의 국민들인 어린이들부터 인터넷 활용법을 제대로 교육시켜야 합니다. 국/영/수/과를 배우기에 앞서 인터넷을 먼저 하는 것이 요즘 세태죠. 그렇다면 네티켓과 민주주의적으로 소통하는 법을 먼저 가르쳐야 합니다. 지금 당장 대한민국 전체를 못 바꾸더라도 미래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니까요.

 

이렇게 네티즌 개개인의 양식이 더 높아지고, 인터넷의 수평적 소통에 의한 자발적 참여가 더욱 더 활성화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좋은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이 씨를 뿌린 민주주의2.0. 이젠 우리 손에 달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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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1. trackback from: 노무현에 대한 잊지못할 기억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만료를 앞둔 며칠 전인 지난해 2월. MBC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2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그때 본 잊지못할 기억 하나. 노 대통령이 촬영팀과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청와대 뜰을 걷고 있었다. 그는 방금 걸은 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 시멘트 길이었는데 돌을 새로 깔았다." 내일 모레면 청와대를 나갈 사람이 왜 길을 굳이 고쳤을까. "대통령이 처음 들어오면 이거 못고친다. 처음 와서 자기가 있을 곳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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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추천하고 갑니다. 너무 와닫는 말씀이시네요.

    비슷하게 적은 글이 있어 드랙백도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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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rackback from: 그 분이 이루지 못한 꿈, 그것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플랫폼
    0. 그분이 갔습니다. 죽었습니다. 포괄적 살인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1. 500년이나 그자리를 지키고 있던 남대문이 타올랐을 때도 한 달여만에 잠잠해졌습니다. 전 국민이 자신의 식탁에 올라올지도 모르는 미친소에 대한 공포도 2달만에 잠잠해졌습니다. 경찰진압으로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음에도 몇 주만에 잊혀져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감각적인 뉴스에 "반응"하기에 충실한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엄청난 사건들을 잊어버립니다. 2. 한국인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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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리카르도 - 2009/05/28 23:12
    제가 몸이 안좋아서 답글도 못 달았었습니다. 좋은 말씀과 트랙백 감사합니다. 리카르도님 글 읽고 댓글 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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