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레진 사건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까지 넘어갔군요. 아래는 사건 요약입니다.
참고, 이전 관련 글 : 티스토리와 레진님의 해법 - 성인인증 블로그
http://itagora.tistory.com/1011. '레진'님은 저속하면서 재밌는 글을 올려 Hanrss 구독자수 2천명을 확보한 티스토리 인기 블로거.
2. Daum에서는 몇몇 포스팅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메일로 통보한 뒤 해당 글을 비공개 처리.
3. 레진님은 메일을 받지 못했고(수신거부 설정), Daum 처사에 항의하여 비공개 글을 다시 공개 처리.
4. Daum에서는 레진님이 블로그 관리 정책에 따르지 않는다 판단, 블로그 전체를 블라인드 처리.
5.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Daum과 레진님은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결국 블로그는 다시 정상화 되었으나 그동안 쌓여 있던 메일을 확인한 레진님은 분노 폭발하고 모든 글을 공개 처리.(레진님 입장에서 너무나 자의적인 판단 기준)
6. 결국 Daum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판단 요청
많은 분들께서 레진 사건과 관련하여 좋은 글 많이 써 주셨는데요, 다른 각도에서, 서비스 운영자 입장에서 짚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Daum은 두 가지 실수를 범했습니다.
첫번째, 포털은 '정상 사용자'를 제재해야 할 경우 개별 글 단위로만 진행해야 합니다.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스패머, 업자로 판단되면 ID 정지, 블로그 폐쇄 건도 쉽게 가능하죠. '인터넷 검색창에 OO 치고 다이어트 하세요'라 스팸 댓글 뿌리고 다니는 업자, '시작부터 벗고 보여드립니다' 댓글을 모든 뉴스에 달고 다니는 업자들은 보이는 즉시 ID 정지시켜도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고, 다른 정상 사용자들 모두 이에 제재하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비스를 100% 왜곡하여 사용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정상 사용자'는 결코 ID 정지나 블로그 블라인드(폐쇄) 처리를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정상 사용자'라 하면,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고, 단순한 '방문자' 차원은 넘어선 상태로 서비스에 대한 애정을 조금이라도 갖게 됐으며, 해당 서비스의 다른 사용자와 교류까지 발생한 사용자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정상 사용자에게 있어 ID와 블로그는 존재의 문제입니다. 이걸 제재하겠다는 것은 '회사는 당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로 귀결됩니다. ID 제재의 상황을 지켜본 다른 사용자는 '나도 조금만 잘못하면 쫓겨나겠네?'란 불안 심리를 공유하게 됩니다. 순수하게 운영자의 입장에서 기술하면, ID 제재가 당장의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줄여줄지 몰라도 그 단계만 넘어가면 운영이 더 힘들어집니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엔 당장 ID 제재당한 사용자의 강한 CS 때문에 어려워지고,
중기적으로 보면 이에 동의하는 다른 사용자의 추가 CS 처리 때문에 힘들어지고,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전체 사용자 불안감 증폭과 서비스 이미지 저하로 큰 손실이 오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진정 사용자를 생각하고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취해서 잘 풀어야 하는 것이고요. 그렇게 커뮤니케이션 취하기 힘들다면 (
남이 신고하지 않는 바에야) 차라리 가만히 두는 것이 낫습니다.
두번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자진해서' 넘길 만한 사안은 결코 아니었습니다.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 발족한 기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언론과 미디어를 심의하여 자기네들 입맛에 맞게 바꾸려는 기구는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학생때 은사님이 거기 높은 위원으로 계셔서 뵙고 말씀도 듣고 했는데, 은사님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분이고 세세하게 미디어에 간섭하는 건 원치 않아 하시더라구요. 다른 위원들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우리나라의 방송, 통신, 신문, 인터넷 매체 모두가 레진 사건 같은 걸 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찾아가면 참 웃긴 모습이 연출되겠죠.
지난번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Daum이 조중동의 공문('불매운동 글 제재해달라')을 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찾아간 적은 있습니다. 그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Daum이 그 공문 거부하고 그 글을 그대로 둘 정도로 현 정부와, 기존 매체와 대립각을 세워서는 Daum에게, 네티즌들에게 좋을 것이 하나 없겠지요. 개구리도 움추릴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건 한 개인 블로거에 관한 사안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주간 2천만명이 방문하는 거대 포털, Daum이 이걸 자체적으로 해결 못하고 고작 9명으로 운영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을 맡기면서 발뺀다? 너무나 방어적인, 보수적인 서비스 운영입니다. 이래선 사용자에게 무슨 감동을 주고, 어떻게 끌어 모으겠어요. Daum이 네이버와 달리 포지션을 잡았던게 "아고라, 티스토리 같은 서비스로 네티즌들 여론을 존중하고 사용자를 위한다"는 것이었는데, 자체적으로 고객 설득도 못하고 운영이 안되어 이정도 사안으로 방송통신심의위에 넘긴다니..
의식있는 사용자라면 "Daum도 별 다를 것 없네 ㅉㅉ" 생각하기 쉽고 이런 생각은 금방 퍼져나가죠. 유사 사건이 재발하면 "Daum 니네 지난번 레진 때도 그러더니.."라고 금방 생각이 떠오르게 만드는, 잘못된 선례를 남긴 겁니다.
전직 운영자 입장에서 적은 글인데요, 아무쪼록 잘 해결되고 떠나는 레진님 붙잡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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